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베트남 전쟁 (문단 편집) == 전쟁의 발발 == [[파일:attachment/jido.jpg]] 중국군의 공세. 국경 전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침공했으나 주공은 라오카이와 랑선 방면이었다. || [[파일:attachment/doha.jpg|width=100%]] || || 중월 국경을 넘어 도하하는 중국군 [[62식 전차]] ||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덩샤오핑]]과 [[화궈펑]]은 '''베트남에 대한 징벌행위'''로써 무력침공을 비밀리에 모의해 대외적으로는 캄보디아 해방 등을 명분으로 삼아 1979년 2월 17일 [[중국군]]이 국경을 넘어오면서 전쟁이 발발했다. 이때 베트남의 국방장관이자 미국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보응우옌잡]] 대장은 친중파이자 주화파였기 때문에 사실상 지휘에서 물러났고 총참모장인 [[반띠엔중]] [[대장(계급)|대장]]이 총지휘를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잡 장군은 실각하고 반띠엔중 장군이 국방장관이 되었다. 사실 잡은 나이가 많아 전쟁 말기인 1975년에는 이미 실권은 대부분 중에게 넘어가 있었다. --근데 잡이 더 오래 살았다--] || [[파일:attachment/vietnam.jpg|width=100%]] || [[파일:attachment/viet-nv.jpg|width=100%]] || || [[PPSh-41|기관단총]]을 든 베트남군 여자 [[민병대]] || 중국군 의무병의 치료를 받는 베트남 [[여군]] 포로 || 베트남군 주력이 모두 캄보디아 방면으로 나가 있었기 때문에 중월전쟁 당시의 사진에는 여자 민병들이 자주 등장한다. 베트남군의 주력은 당시 1,000km가 떨어진 캄보디아에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트남 북부는 거의 공백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중국에서는 '단숨에 [[하노이]]까지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선전했지만, 문제는 당시 베트남이 중국이 쉽게 털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명실공히 [[초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도[* 비록 자기 스스로가 제한을 걸어 둔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무려 8여년을 굳건히 버텨낼 정도의 저력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군이 쉽게 상대할 만한 적은 아니었다. 중월전쟁 당시 베트남군의 총병력은 현역만 세계 3위권이었고 1975년부터 캄보디아에서 철수하는 1980년대 말까지 베트남군 총병력은 100여만 명이 넘었다. 감축된 후에도 현역 45만, 예비군 500만으로 여전히 대병력이다. 게다가 저 민병들 중에는 [[비엣민]], [[베트콩]] 출신들이 많았다. 당연히 이들은 모두 게릴라전이나 시가전 등 실전경험이 중국군보다 더 '''풍부할 정도로 많았다.''' [[미군]]이 남기고 간 무기도 상당했고 그 덕분에 무기의 양은 적어도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말까지 베트남군은 미제 전투기 [[F-5]]와 [[A-37]] 및 미제 [[헬리콥터]] 다수를 사용했을 지경이었다. 반면 당시 중공군은 열악한 물적 상황에서도 창의력과 오랜 실전에서 다져진 경보병 발로 하는 기동전으로 UN군을 깜짝 놀라게 한 하드웨어는 부실했어도 소프트웨어는 상당히 숙련되었던 30년 전 [[6.25 전쟁]] 시절의 중공군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어도 당장 구식 전술과 구식 장비들로 인해 승리를 할 수 있을까 말까인데 무엇보다 이 시기 중국은 여전히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군부 숙청과 군대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전문성 마비의 여파가 생생하했다. 애초에 '''강대국의 정규군'''과 최근에 총력전까지 치른 상태였던 (중국에 비하면)'''소국[* 1979년 베트남 인구가 이미 5,300만명이었는데 전세계 어디 내놓아도 객관적으로 '소국' 소리 들을 만한 덩치는 아니다. 사실 한국도, 동남아 열국들도 자체적으로 보면 4,000만명, 5,000만명대 인구는 기본에 그리 작은 나라들이 아닌데 워낙 중국이 크다 보니 외부적으로도 그렇고 내부적으로도 중국 이웃나라 사람들은 스스로를 '소국'으로 인식하는 성향이 있다.]의 2-3선급 민병대''' 간의 결과가 뻔한 싸움으로 보였던 전쟁이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이러한 내부의 조직적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